노직의 경험 기계
Robert Nozick, Anarchy, State, and Utopia, chapter 3 · 1974
원하는 삶을 무엇이든 골라 살게 해 주는 기계가 있어요.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삶이에요. 연결하시겠어요?
어떤 경험이든 원하는 대로 주는 기계가 있다고 해 봐요. 신경심리학자들이 뇌를 자극해서, 위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거나 친구를 사귀고 있다거나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고 느끼게 할 수 있어요. 그동안 뇌에 전극을 꽂은 채 통 속에 떠 있어요. 앞으로 2년 동안의 경험을 프로그래밍하고, 10분 동안 올라와서 그다음 2년을 고를 수 있어요. 평생 연결하시겠어요?
노직은 대부분 아니라고 답할 거라고 생각했어요. 이후 조사에서는 사례를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, 특히 이미 연결된 상태인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고 나와요(De Brigard, 2010). 그는 세 가지 결론을 끌어냈어요.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경험만이 아니라 실제로 하고 싶어 해요.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데, 통 속에 떠 있는 몸은 어떤 종류의 사람도 아니에요. 그리고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어떤 것보다 깊은 현실과 닿고 싶어 해요. 경험만이 중요하다면 이 중 어느 것도 의미가 없을 거예요. 그러니 경험만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.
이 논증은 쾌락주의와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공리주의를 겨냥했고, 지금도 힘이 있어요. 시뮬레이션의 설계 지침으로도 쓸 수 있어요. 연결되도록 만든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? 사후 세계 프리셋이 답이에요. 그려 놓은 세트, 싱글 플레이어,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렌더링하지 않기, 고통 꺼짐, 반복되는 시간이에요.
샌드박스는 그 낙원에 연산이 얼마나 드는지 계산하는데, 답이 시사하는 바가 커요. 가능한 구성 중 가장 싼 축에 속해요. 고통이 없으면 걸린 것이 없고, 걸린 것이 없으면 계산할 것이 적어서 총량이 무너져요. 윤리 창의 네 학파 중 세 곳이 반대해요. 나머지 한 곳은 찬성하는데, 고통 없는 최대 행복의 세계가 그 학파의 계산이 권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.
두 번째 해석이 있어요. 노직은 기계를 고르겠느냐고 물어요. 시뮬레이션 가설은 이미 그 안에 있는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건 아닌지 물어요. 그가 거부하는 세 가지 이유는 시뮬레이션된 사람이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세 가지 이유와 같아요. 그중 어느 것도 렌더링이 얼마나 좋은지에 관한 것이 아니에요.